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낟알끼리 달라붙고 부드럽게 뭉개져서 무엇이든 되는 돼지찰벼.
돼지찰벼 DWAEJICHAL-BYEO의 '낟'말들로 차짐을 표현했다.

7월 말. 어떤 곡물이 들어있는지 모른 채로 곡물집으로부터 택배를 받았다. 옅은 분홍색 바탕에 쌀알이 뿌려진 듯한 패턴의 패키지에는 '돼지찰벼'라고 쓰여있었다. '돼지찰벼? 찰벼는 찹쌀을 말하는 걸까? 그런데 돼지는 뭐지? 낟알이 돼지처럼 통통한 걸까?' 봉투를 열고 한 꼬집 먹어 봤다. 사실 나는 이미 집에 찹쌀을 갖고 있었다. 몇 달 전 찹쌀을 넣은 고모쿠고항을 만들어 먹었기 때문이다. 마트에서 샀던 찹쌀과 돼지찰벼는 어떻게 다를까. 오롯한 맛을 느끼기 위해 돼지찰벼만으로 밥을 지었고 윤기가 흐르는 갓 지은 밥을 보고 먼저 떠오른 건 '명절'이었다. 할머니 댁에서 먹었던 뽀얀 찹쌀밥. 밥을 한 술 떠 씹어보며 고소하고 약간 달큼한 맛을 느꼈다. 이 찰벼의 이름에 '돼지'가 붙은 이유는 귀한 것에 거친 이름을 붙이는 관습 때문이기도, 도정하기 전 볍씨의 색상이 붉은 돼지를 떠올리게 하는 것도 이유겠지만 맛을 경험했을 때 무엇보다 찹쌀이 주는 푸근함과 편안함이 넉넉한 돼지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10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 특별전, 생태미술 프로젝트.
곡물집集 x 광주시립미술관
2023. 8. 23. ~ 12. 31/ 광주시립미술관 본관 중앙로비

2023, Po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