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공이에 대하여
나는 왜 파랑을 좋아했는가
001에서 013까지, 사물로 타이포그래피를 하는 방법
UE11) Top View, 2020 Calendar
지금 중국 그래픽 디자인



건공이에 대하여


졸업한 지 약 5년 만에 다시 학교에 다니고 있다. 5년 사이에 바뀐 캠퍼스 풍경이 있다면 '고양이'를 꼽고 싶다. 내가 다니는 학교 외에도 주위의 여러 학교에 교내 고양이를 보살피는 동아리가 있다. 학교라는 경계선 안쪽에 자리를 잡은 고양이는 길에서 만나는 고양이보다 덜 초췌한 모습인데, 학생들이 꾸준히 사료와 쉬어갈 보금자리를 제공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학생들에게 보살핌을 받은 고양이는 종종 건물에 들어오기도 하지만 자신들이 지켜야 할 선 ㅡ학생들의 작품을 부수지 않는다 등ㅡ을 알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있는 조형관을 책임지는 고양이는 '건공이'다.

건공이는 건설공학관을 주된 영역으로 살고 있다. 최근에는 범위를 넓혀 조형관이나 법학관, 전농관에서도 자주 모습을 보이는데 학교에 살고 있는 인문이, 또치, 우왕이, 좌왕이 보다 훨씬 넓은 범위이다. 건공이를 처음 본 것은 작년 7월쯤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발을 내디뎌야 할 곳의 한복판에 주황빛의 커다란 고양이가 누워있었다. 어떻게 내려야 할지 고민하다가 고양이 몸 위로 발을 뻗어 넘어갔는데, 고양이는 당황해하거나 놀란 기척이 전혀 없었다. 그동안 내가 보아 온 고양이는 사람과 멀찍이 서 있고 다가가면 피하는 동물이었는데, 당당하게 누워있는 이 고양이와의 만남은 놀라웠다. 재밌지만 황당한 경험을 학교 사람들에게 말했고, 이 고양이는 적어도 2014년부터 이 학교에 살아왔고ㅡ2008년부터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ㅡ 이름은 '건공이'라고 했다.


건공이가 주로 다니는 건물




이후 나는 조형관에 갈 때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건공이를 찾았다. 고양이를 한 번도 만져본 적이 없었는데 저렇게 푸근한 고양이 라면 내가 손을 뻗어도 피하지 않을 것 같았다. 12년 동안 강아지를 키워본 경험을 바탕으로 건공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주로 7층에 머무는 나는 할 일을 하다가 휴식을 핑계 삼아 건공이가 있는지 2층ㅡ조형관의 현관ㅡ에 종종 내려갔다. 건공이는 현관문을 열(어달)라고 하기도 했고, 세면대에 물을 틀(어달)라고 하기도 했고, 사람들이 오가는 계단 한가운데 누워있는가 하면 조각 작품 받침대에 앉아 있기도 했다. 환경조각학과가 위치한 2층에서 학생들이 만든 조형물과 건공이는 예상치못한 시너지효과를 냈고, 볼 때마다 상상치 못한 곳에서 자유롭게 누워있는 건공이는 학교생활에 활력을 일으켰다.
   
건공이는 특히 학기 중에 '슈스(슈퍼스타)'가 된다. 학생들은 건공이의 걸음을 뒤따라 걷고 가방에서 주섬주섬 간식을 꺼내 먹이기도 한다. 직접 챙겨온 장난감을 꺼내 건공이 앞에서 화려한 낚시질을 선보일 뿐만 아니라 유투브로 새가 날아다니고 다람쥐가 뛰어다니는 동영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고양이로서 나이가 많은 건공이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은데 잠을 자는 모습은 너무 귀여워서 쓰다듬기도 한다. 건공이는 학생들의 손길이 귀찮아지면 낮 동안에 모습을 감추고 저녁이 되어서야 나타난다. 방학에도 건공이의 인기는 여전하지만 학기보다는 여유가 있다. 손길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며 그르릉그르릉하는 소리를 낸다. 나는 건공이를 쓰다듬다가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늦은 저녁 대학원에 공부를 하러 온 어르신과 고양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음식을 배달하고 가게로 돌아가기 전 건공이에게 간식을 주는 배달원도 보았다. 수업 시간인데 건공이에게 무릎을 내주고 쓰다듬고 있는 학생을 보는 건 흔한 일이다.

몇 달 전에는 조형관에서 건공이가 녹색 토를 하고 하루 종일 누워있는 모습을 봤다. 적지 않은 나이가 걱정되어 동아리에 상황을 알렸고, 건공이는 동물 병원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다. 건공이의 검진 비용은 몇 년 전 건공이의 오른쪽 귀가 다쳤을 때 건설공학관의 사람들이 모은 비용으로 지불되었다. ㅡ다행이 건공이는 나이에 비해 건강했다.ㅡ 얼마 전에는 동아리에서 건공이 스티커와 머그컵을 판매했고, 수익금은 동아리 운영비용으로 쓰인다고 한다.

무던하고 친근하고 아주 가끔 새침한 건공이는 매일 학교의 여러 건물을 오고 가느라 바쁘다. 야무지게 건물 구석구석 다니며 강의실에서 수업은 잘 진행되는지, 뒤뜰에 침입자는 없는지 점검한다. 다른 고양이를 만나면 혼을 내주기도 한다. 쓰레기통 옆 박스를 스크래처로 사용하며 손톱 손질도 잊지 않는다. 건물마다 배치된 사료와 물을 맛보고 마주친 사람이 가방이나 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내는 듯하면 다가가 볼을 비비거나 자리에 앉아 기다린다. 그리고 나는 학교에서 건공이를 마주침으로써 오늘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다는 안정감을 느낀다.


+ 건공이는 황금색 털에 짙은 줄무늬가 있는, 흔히 말하는 치즈냥이다. 다른 고양이보다 머리는 약 두 배가 크다. 몸집도 육중해서 건공이를 보면 작은 호랑이가 떠오른다. 그럼에도 1미터는 되는 세면대에 가볍게 오른다. 간식을 보거나 놀랄 일이 없는 이상, 반쯤 뜬 듯한 눈은 눈꼬리가 위로 올라가 사나운 인상에 제일 큰 역할을 한다. 건공이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네이버, 구글에 '건공이'를 검색하면 된다.





2020. 1.

사록
@sa.rok.sarok







나는 왜 파랑을 좋아했는가




나는 노랑, 주황을 좋아하게 되었다. 이전에 좋아했던 색이 무엇인가 묻는다면, 파랑이었다. 유년기를 거쳐 최근까지도 파랑을 가장 좋아했다. 도도하면서도 넓은 아량이 느껴지고, 차가운 듯하지만 마냥 무심하지 않았다. 옷을 고를 때는 어두운 파랑을, 디자인할 때도 선명한 파랑을 곧잘 선택하곤 했는데 점차 다른 색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생활환경이 바뀐 데서 오는 새로움과 즐거움 때문에 노랑, 주황 같은 경쾌한 색을 좋아하게 됐으리라 짐작한다. 문득 노랑, 주황이 좋아졌듯이 파랑도 ‘좋으니까 좋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 느낌이 왜 생겨났는지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랑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랑의 역사> 저자인 미셸 파스투로는 프랑스의 중세 역사 교수이자 상징학 전문가로 색의 역사에 대한 책을 다수 펴냈다. <파랑의 역사>의 원서는 2000년에 발간된 <Bleu : Histoire d' une couleur(파랑: 색의 역사)>로 파랑을 시작으로 이후 검정, 빨강, 초록을 다루었다. 노랑, 주황보다 파랑, 검정, 빨강, 초록은 명징하게 역사가 있는 색상인 것이다. 파란색은 많은 설문조사에서 세계인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기도 하다. 영국의 연구리서치 회사 YouGov가 2015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국가별로 선호하는 색상의 종류 모두 다르지만 가장 표를 많이 받은 색은 파랑이다. 물론, 책 표지에 쓰인 대로 파란색이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로마인들이 19세기 몇몇 학자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청색을 ‘분별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면 그들은 청색에 대해 좋게는 무관심했으며 좀 심하게는 혐오했다고 볼 수 있다.
        파랑은 미움받던 색이었다. 로마인에게 파란색은 켈트족이나 게르만족처럼 미개한 자들이 상대에게 겁을 주기 위해 몸에 칠하는 색이었다. 그들은 짙은 청색이 주는 깊이에서 지옥과 죽음을 연상했고, 파란색 눈을 가진 사람은 배척했다. 그런 취급을 받던 파란색은 1200년대가 되어 대청 재배 기술의 발달로 새 국면을 맞이한다. 옷감 염색 기술이 발전하여 선명한 파랑을 만들 수 있게 되자 성직자와 귀족을 중심으로 의복에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전처럼 탁하지 않은, 맑은 파란색은 성모마리아의 옷에도 칠해졌다. 청색은 왕의 위엄을 상징하고, 문학에서 기쁨과 사랑을 표현했다. 청년들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속 베르테르의 청색 연미복을 따라 했다. 서민들은 우울함, 향수병을 뜻하는 ‘블루 데빌(blue devil), 블루스’를 들으며 애환을 달랬다. 노동자는 하늘색 와이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비지땀을 흘렸다.

        색은 무엇보다도 사회적 현상이다.
        파랑은 자연스러운 색이 아니다. 자연에서 파랑은 하늘과 바다에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손에 쥐고 사용할만한 파란색 염료를 얻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상용화되는 데에 다른 색보다 늦은 출발이었다. 파랑은 기존에 있던 검정에 비해, 흰색에 비해, 빨강에 비해가며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사랑받기도 하고 배척당하기도 했다. 파랑은 결국, 이러한 색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변화하는 세태 속에서 그 역할을 꾸준히 달리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태어나고 성장한 20세기 말과 21세기 초의 파랑은 국제기구의 깃발과 대기업의 로고 등에 사용되며 안정감, 유별나지 않음, 이성적임, 평화로움을 뜻했다.

        최근에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팔레트를 갖게 되었다. 검정과 흰색, 파란색이 거의 전부였던 옷장에는 빨간색과 은색도 채워졌다. 디자인한 포스터에는 노란색과 주황색, 심지어 싫어했던 분홍색도 과감하게 사용했다. 색을 잘 운용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지만, 여러 색을 써봐야겠다는 다짐과 쓸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다. 여러 가지 색을 다루는 데서 오는 풍요로움과 자유로움을 한껏 만끽하는 것 또한 디자인하는 것의 즐거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파랑을 말하지 않을 것 같다.



2019. 12.

사록
@sa.rok.sarok







001에서 013까지, 사물로 타이포그래피를 하는 방법




타이포잔치 «타이포그래피와 사물»은 숫자의 사용이 눈에 띈다. 포스터 하단의 전시 제목 중 ‘만화경과, 다면체와, 시계와, 모서리와, 잡동사니와 식물들’ 에는 각각 (1)부터 (6)까지 번호가 쓰여 있고, 상단에는 이를 상징하는 이미지 여섯 개와 해당 단어의 번호가 있다. 뿐만 아니라 전시장에서도 작품에 대한 설명을 번호가 대신했다. 모바일 디바이스를 통해 도슨트 웹사이트에 접속한 후, 작품 번호를 입력하면 설명을 볼 수 있는 방식이다. 리플렛에도 전시 제목과 기획 의도와 함께 작품의 번호가 나열되어 있다. 나는 총 195팀의 디자이너가 참여한 대규모 전시의 사물들을 감상하는 방법으로 작품에 매겨진 번호를 순서대로 따르기로 했다. 리플렛에 적힌 숫자 위에는 큐레이터의 이름과 섹션 명이 쓰여 있어서, 번호에 따라 큐레이터의 의도를 읽으며 전시를 관람하게 됐다. 박찬신, 김어진, 용세라, 이윤호와 김강인, 노은유와 함민주 총 다섯 팀은 큐레이터로 참여하여 각각 ‹만화경›과 ‹다면체›와 ‹시계›와 ‹모서리›와 ‹잡동사니›와 ‹식물들›이라는 사물을 소주제로 전시장을 꾸몄고, 나는 이 중 박찬신 큐레이터가 기획한 ‹만화경› 섹션을 중점으로 살피려고 한다.












«타이포그래피와 사물: 만화경과, 다면체와, 시계와, 모서리와, 잡동사니와, 식물들 포스터»



전시장에서 사용된 번호 패널


‹만화경›에 (1)이 붙은 이유
‘사물과 타이포그래피’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연상되었던 것은 사물에 글자가 쓰여 있는 형태였다. 표지판, 자, 과자봉지, 휴대폰 화면 등 거의 모든 사물에 글자는 함께한다. 일과 물건, 물질세계에 있는 모든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존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는 ‘사물’이라는 단어는 그 광의성 때문에 이 전시의 모든 작품에 타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 하지만 왜 이 사물이 바깥이 아닌 전시장에 있어야 하는지 설명하지 못할 수도 있다. 총감독은 기획 의도에서 ‘분해와 조립’을 타이포그래피와 사물의 유사한 원리로 설명하며, 이를 기준으로 타이포그래피와 사물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려 한다고  밝히고 있다. 내가 이번 전시에서 가장 기대한 것은 타이포그래피와 사물이 만나는 다양한 방식이었으며, ‘사물’이라는 광범위한 뜻의 단어에 속하는 개체들을 어떤 기준으로 분석하고 규정하여 각각의 섹션을 이루었을지 궁금했다.
        나의 기대에 가장 충족한 섹션은 ‹만화경›이다. 먼저, 섹션에 속한 작품의 다양성이 두드러졌다. 열 세팀의 작가가 운용하는 타이포그래피 방법과 특징이 뚜렷해서 각각의 작품을 감상하며 사물과의 관계성에 대해 생각할 여지가 많았다. ‹시계› 섹션의 경우 ‘시계’라는 하나의 주제로 여러 디자이너가 그래픽 작업을 하고, 각각의 그래픽은 시계의 한 요소가 되어 시계를 닮은 움직임을 갖고, 소리를 내며 마치 시계가 되어 움직였다. 하지만 작가마다의 특징을 알아보기 힘든 점이 아쉬웠다. ‹식물들› 섹션은 ‘순환’이라는 속성으로 식물과 베리어블 폰트를 꿰어냈지만, 하나의 구조물에서 영상을 보는 전시 방식이 약간 단조롭게 느껴졌다. 두 번째로, 작품에 사물이 적절하게 사용되었다. ‹만화경› 섹션의 작가들은 저마다의 타이포그래피 방식을 갖고 있고, 작가의 타이포그래피 방법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여러 가지 사물을 사용했다. 전시할 사물을 정해두고 글자가 표면에 부착되거나 구체적인 글자 형태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와 사물이 더 밀접하게 느껴졌다. 타이포그래피와 관련된 물건들을 보여주는 잡동사니›의 경우, 몇몇 작품은 글자가 쓰인 사물이라는 것 외에 기준이 모호하여 일반 사물과 전시된 사물의 구별점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만화경›은 하나의 섹션으로서 완성도가 높았다. ‹만화경› 섹션은 거의 모든 작품이 같은 형식의 구조물 위에 놓여있어 통일성이 느껴졌다. 또, 작품이 과거 ‘양식당 그릴’로 사용된 넓은 공간에 서로 적당한 공간을 두고 배치되어 관람환경이 쾌적했다. 모두 다른 결을 가진 작품을 정성스럽게 보조하는 구조물에 설치된 작품을 보며, 바닥에 깔린 빨간 카펫을 천천히 걸었다. ‹다면체› 섹션은 1층과 2층에 나누어 작품이 설치되어 있는데, 한 작품이 한 공간을 모두 차지한 작품도 있었고 아홉 개의 작품이 2층의 한 공간에 배치된 것도 있었다. 그곳에서 어떤 포스터는 낱장으로 바닥에 놓여있고, 어떤 포스터들은 나무 패널에 앞뒤로 윗부분만 붙은 채로 있었고, 또 다른 포스터는 문 뒤에 세워져 있었다. 심지어 거치대 자체가 스스로 서 있을 수 없어 테이프로 바닥에 고정한 경우도 있었다. 하나의 섹션임에도 제각기 놓인 작품들을 보며 이 섹션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문화역284를 찾은 관람객은 대개 접근이 편한 1층의 전시실부터 감상한다. 하지만 2층에 있는 섹션에 (1)번을 부여한 것을 고려한다면, ‹만화경› 섹션이 기획자의 의도가 가장 잘 드러난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예술감독인 진달래&박우혁이 밝힌 타이포잔치와 ‹만화경>의 기획 의도는 가장 비슷한 맥락을 갖고 있다.



만화경처럼 다채로운 타이포그래피의 방법들
만화경은 내부의 작은 색 조각들이 어떻게 분해되고 조합되는지에 따라 다양한 색과 형태를 보여주는 매력적인 사물이다. 이 사물을 섹션명으로 삼은 ‹만화경›에서 타이포그래피의 ‘분해와 조립’을 명확히 보여주는 작업은 황지훈의 ‹접점›이다. 낱개의 목재가 흰색 조인트로 연결되고, 구체적인 형태가 되는 것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접점›의 유닛들은 다양한 형태로 책상도 되고, 포스터 거치대로도 만들어져 (1)만화경 섹션에서 다른 작품을 보조하며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황지훈의 ‹접점›에 사용된 흰색 조인트


1. 분해하기
그래픽디자인에서 분해와 조합을 자유롭게 하게 하는 것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레이어이다. 마티아스 슈바이처의 ‹포스터들›은 6개의 포스터 작업으로 그 속에서 각각의 레이어에 자리 잡은 디자인 요소들은 구겨지고 깨어지고 튕겨 나가서 분리되기고 펜툴로 이미지의 한 장면을 오려내기도 한다. 자동차 위에 햄 조각을 올리거나 석양이 지는 풍경에 낮의 해변을 붙이고, 분홍색 글자와 의미를 알 수 없는 낙서, 거미줄, 물방울과 같은 자잘한 요소들이 포스터 화면 안에서 한 데 엉켜 있다. 어느 것 하나 수평 수직에 맞추지 않은 포스터의 요소들은 직사각형 종이 위에서 흩어지고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은 여러 요소가 작용하는 행위이다. 작샬로테 렝거스도르프의 ‹Gestural Alphabet› 영상은 흑백 화면으로 만들어졌는데, 검은 바탕에 흰색으로 무언가 쓰는 모습을 담고 있다. 색깔이나 형태처럼 의미를 유추하게 하는 요소가 제거된 상황에서 바라본 ‘쓴다’는 행위는 서걱이는 소리를 들리게 하고, 움직이는 동작을 관찰하게 한다. 글자를 쓰는 것이 목적인 사물로 글자를 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행위인데, ‘쓴다’는 행위를 관찰하자 그려진 형태와 동작, 소리가 나뉘어 인지되었다.
        이미지를 축소하는 것이 흩어진 색과 형태를 한데 모으는 작업이라면, 이미지를 확대하는 것은 그것을 분해하는 작업으로 볼 수 있다. 이미지를 확대함으로써 미처 몰랐던 물성이 발견된다. 최예주의 ‹실제 사이즈›는 작가 자신이 디자인 한 책의 일부분을 접사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아 다른 시각으로 물성을 경험하는 작업이다. 이미지를 확대할수록 화면 중앙에 있던 이미지는 화면 밖으로 점점 이미지는 밀려 나가고, 맨눈으로 볼 수 없었던 프린트의 아름다운 망점과 종이의 거친 결을 발견하게 된다.


작샬로테 렝거스도르프의 ‹Gestural Alphabet›



2. 조합하기
그래픽디자인에서 각각의 요소가 있는 낱개의 레이어를 합침으로서 작품은 완성된다. 컬러 라이브러리의 ‹컬러 라이브러리>와 문상현의 ‹LETTERS MATTERS›는 완전히 포갠 레이어가 ‘무엇’을 보여주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컬러 라이브러리는›는 이미지를 하나의 색상 표현한 포스터와 여러 개의 색으로 구현된 이미지를 포스터로 프린트해서 걸어 두었는데, 다양한 색을 겹칠수록 이미지는 실재에 더 가깝고 선명해진다. ‹LETTERS MATTERS›는 투명한 아크릴 패널 위에 각기 다른 ‘통신 장애’ 이미지를 프린트하고, 레이어들을 알파벳이 쓰인 원본 위에 쌓는다. 레이어의 수가 많아질수록 가장 아래에 놓인 본래 내용을 알아보기 힘들어진다. 각각의 레이어가 어떤 이미지를 담고 있는지에 따라 최종적으로 합쳐진 형태는 대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숨기기도 한다.
        나란히 배치한 레이어를 일부분만 포개어 볼 수도 있다. 손아용의 ‹중립›은 포개진 부분을 상상하게 하는 작업이다. 전시장 바닥에 이미지가 그려진 108개의 패널이 놓여있어 ‹만화경› 섹션에 입장한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각각의 패널에는 풍선, 신발, 촛불 등의 사물이 그려져 있다. 사물들은 가로로 긴 종이 양 끝에 각각 다른 상태로 그려져 있고 가운데의 빈 공간, 즉 중립이 되는 곳에 관람객이 상황을 상상하여 채워 넣는 작업이다. 왼쪽과 오른쪽의 사물을 보고 두 사물을 원인과 결과라는 관계로 이해할 것인지, 그저 나열된 사물들로 해석할 것인지,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가운데에 그려지는 사물은 다른 모습을 하게 된다.
        하나의 레이어에 시간을 두고 움직임이 겹쳐질 수도 있다. 투오마스 코르타이넨의 ‹지나간 시간 속 장인으로부터(Inspired by artisans of times gone by)›는 작가가 그린 낙서가 새겨진 아크릴 위에 관람객이 얇은 종이를 대고 흑연으로 탁본을 뜨는 작업이다. 마치 흑연이 올려진 손 마네킹은 먼저 낙서를 했던 작가의 손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 손은 지금 전시장에서 관람객에게 협업을 제안한다. 흑연을 건네받은 관람객은 낙서 위를 따라 움직임으로서 시간을 두고  관람객이 작가의 움직임을 재현하게 된다.


투오마스 코르타이넨의 ‹지나간 시간 속 장인으로부터(Inspired by artisans of times gone by)›





나는 첫 번째 섹션인 ‹만화경›에서 사물로 하는 타이포그래피, ‘분해와 조립’을 단서로 천천히 숫자를 셌다. 001에서 013까지의 작품에서 분해하고 조립한다는 개념은 사물로 실체화 되어 확대되고, 겹쳐지고, 다른 요소를 발생시켰다. 첫번째 섹션인 ‹만화경›을 관람한 후 다음 섹션으로 자리를 옮기며 번호는 뒤섞이기도 하고 하나로 묶여 혼란스러웠다. 올해 타이포잔치는 어쩌면 모바일 디바이스를 사용하는 것 외에 부가적인 설명이 전시장에 없어서 전반적으로 작품을 감상하기가 쉽고 경쾌했으며, 또 예쁘고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아 폭넓은 연령층이 즐겁게 관람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전시된 개체들은 사물이기도 하지만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에 있는 작품이고 그저 사물에 글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로 하는 타이포그래피도 보여주고자 한다. 그렇기에 작품이 번호와 함께 덩그러니 있는 것은 정보를 다룬 방법에서 아쉽다. 001, 002.. 숫자를 세며 오늘날의 타이포그래피가 많은 것을 재료로 삼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외에 어떻게 타이포그래피의 방식을 사물로 보여줄 수 있는지 조금 더 친절하게 말해주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2019. 12.

사록
@sa.rok.sarok







UE11 Top View, 2020 Calendar



Top view, 실크스크린. A0, 841 x 1189 mm.
구글어스(Google Earth)로 지구를 바라보는 신의 기분을 가늠할 수 있다. 나는 종종 구글 어스를 이용해 화면 속에서 지구를 마음대로 굴렸다. 지구의 표면에 자연과 사람은 여러 그림을 그렸다. 유명한 건축물이나 장소를 위에서 본 모습은 생각보다 단조롭기도 했다. 용인에 있는 골프장은 위에서 보면 여러 개의 지렁이가 모여있는 것 같았고 상하이에는 상상도 못한 형태의 건축물이 많았다. 나는 아름답다고 판단한 형태를 따라 그렸다. A0 사이즈의 종이에 형태를 배치할 때 1번에서 100번까지 선의 형태에 따라 번호를 부여했는데, 초반부는 불규칙한 곡선, 중반부는 반듯한 곡선, 후반부는 직선으로 배치했다. 총 47개 도시의 100가지 형태를 그렸으며 형태 옆에 쓰여있는 번호와 파일 커버에 쓰인 인덱스를 맞추어 어느 지역의 형태인지 알고 감상할 수 있다. 얇고 커다란 종이에 실크스크린으로 인쇄하여 손으로 선을 매만지면 도톰한 표면을 느낄 수 있다. 책상 근처에 두고 자주 포스터를 펼쳐보고, 때가 타도 멋스러운 파일 종이를 이용하여 커버를 제작했다.



2020 calendar, 리소프린트. 65x290 mm
새해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연말이다. 나는 계획을 세울 때 큰 종이에 세로로 7칸을 나누고 날(日)을 이어 쓴다. 큰 눈금인 달(月)이 열두 번 모이면 한 해가 된다는 느낌보다 365개의 작은 눈금이 모여 한 해가 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오늘이 한 해의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확인하며 남은 날 동안의 계획을 다듬는다. 요일 배치는 주말을 앞으로 두어 휴일을 명확히 알아보기 쉽게 했다. 주말은 검정으로 통일하되, 주 중의 날짜는 달이 바뀔 때마다 색을 다르게 했다. 직접 디자인 한 서체로 레이스 무늬가 올록볼록하게 있는 종이에 발랄한 오렌지와 핑크로 리소 인쇄를 했다. 마치 벽지에 형광펜으로 툭툭 날짜를 쓴 듯한 느낌이다. 내가 날짜를 보는 기준을 반영한, 내 취향을 가득 담은 캘린더를 만들었다.






2019. 11.

사록
@sa.rok.sarok






지금 중국 그래픽 디자인




올해 5월 4일 DDP에서 있었던 〈그래픽 디자인아시아〉는 도쿄, 타이페이, 선전, 서울, 방콕, 베이징, 싱가포르 등 아시아의 여러 도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연륜있는 디자이너들의 강연으로 이루어졌다. 아시아의 디자인은 서로 닮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 다른 생각과 미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이 행사에서 강연을 한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경험이 많은 디자이너들로 작업 스케일이 크고 능숙했다. 각 도시를 대표하는 디자이너의 작업을 보고 나니 내 또래의 아시아 디자이너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작업을 하는지 궁금했다.

마침 10월 4일 오후 3시 서울시립대학교 조형관에서 <아시아 센추리 디자인 초빙 특강〉이 있었다. 상해와 항저우의 신진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네 곳이 약 한 시간씩 소개와 개인 작업 및 스튜디오 작업을 이야기하고 질의응답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글에서 나는 각 스튜디오의 짧은 소개와 스튜디오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대표작업 1~2개를 선정하여 소개하려 한다. 나와 비슷한 또래인 중국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이야기를 통해 아시아의 젊은 디자이너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은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디자이너의 역할과 의미를 고민하는 Related Department
Shanghai, http://www.related.design/


설립자인 스칼렛 신 멩(Scarlett Xin Meng)은 스튜디오 이름을 소개하기 위해 중국의 신문 기사 일부분을 보여주었다. ‘관련 부문(有关部门)'이라는 단어는 우리나라 기사에서도 ‘관련부처'라는 표현으로 종종 사용된다. 독자에게 이 단어는 기사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이 무엇과 관련 있는지 명확하게 대상을 지칭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책임을 전가하는 용도로 느껴진다. 스칼렛은 모호한 용례를 가진 이 단어를 스튜디오 이름으로 정했는데, 이는 ‘한 발 물러섬으로써 디자인이 더 돋보이게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칼렛은 또한 자신의 스튜디오가 있는 상하이가 현대도시로서 어떻게 외래문화를 받아들이고 있는지, 스튜디오가 상하이에 있는 것이 창작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사회적인 맥락에 대해 고민한다고 했다.



미술전시 〈Form Consumption Over Substance Reflection〉의 무빙 포스터가 인상깊었다. 세로로 긴 포스터의 지면 안에 검정 선으로 그려진 사각형이 있고 선의 안쪽을 따라 전시 일자, 오프닝 날짜, 작가 이름이 적혀 있다. 또 그 안쪽에는 형광 녹색의 선이 있고 이 선을 따라 전시명이 쓰여있다. 가장 바깥에 위치한 검정 선이 변하는 형태에 따라 그 안에 위치한 형광 녹색의 선도 함께 움직인다. 총 여섯 번 형태를 바꾸는 이 포스터는 멈추어 있는가 싶으면 꼼질꼼질 다음 형태로 모양을 바꾼다. 스칼렛은 전시에 사용된 ‘instead of thinking, one should act.’라는 문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는데, 이 문장을 표현하는 데에 무빙포스터만큼 적절한 매체는 없을 듯 하다.


대중을 위하는 책 디자인을 하는 XYZ Lab
Shanghai, http://shao-nian.com


완칭 자오(Wanqing Zhao)는 ‘XYZ Lab은 디자인 스튜디오라기보다 프로젝트의 성격이나 규모에 맞게 멤버를 구성하는 스터디 그룹에 가깝다’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XYZ Lab은 책 디자인을 많이 하는데, 책 디자인은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출판사를 만들거나 글을 쓰는 등 책과 관련된 여러 일에도 관심이 있다고 했다. 함께 책을 만들었던 출판사 대표의 말을 소개했는데 이 문장은 그들이 책 디자인을 하는 데 근간이 되는 듯했다. '우리는 부자들을 위한 고급스러운 책보다 좋은 내용을 담은 평범한 책을 만들 것이다.'

다수의 인문학 도서 디자인를 진행한 일화를 소개했는데 군더더기 없이 담백한 디자인이 특히 눈에 띄었다. 이들은 디자인할 때 사진을 사용하는 것은 너무 쉽게 독자에게 이미지를 전달하는 방식이기에 최대한 배제하고 타이포그래피나 도형을 사용한 디자인 방법을 고민한다고 했다. 이후, 패션 잡지 〈rougefashionbook〉 디자인을 보여주었는데 인문학 도서와 상반된 이미지 때문에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 책의 세 면에서 마치 광고지처럼 삐죽 튀어나온 원색 종이에는 'ROUSE FASHION BOOK'라는 잡지 이름이 구불구불한 서체로 쓰여있고 또 잡지 호수와 바코드가 프린트되어 있다. 책의 디자인 만큼 화보 사진도 과감하고 파격적이어서 형식과 내용의 균형이 알맞게 느껴졌다. 시각적 이미지를 중시하고 변화하는 속도가 빠른 패션계에서 소비자의 눈에 띌 수 있는 좋은 디자인의 잡지라고 생각했다.




유연한 사고로 기발한 접근법을 제시하는 Atmosphere Office
Shanghai, https://www.atmosphereoffice.cn


Atmosphere Office의 설립자인 롱카이 헤(Rongkai He)는 개인 작업으로 합성한 이미지를 몇 가지 보여주었다. 드론으로 선풍기를 만들거나 랩탑을 조명으로 활용하고, 삼성의 폴더블폰을 여러 개 연결하여 화면이 가로로 길게 보이는 이미지였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롱카이 헤의 다소 엉뚱하지만 기발한 상상력이 스튜디오 작업에도 녹아 있는 듯했다.

〈New Order〉라는 전시의 포스터에 사용된 한자는 상부가 과장되게 작게 그려져 있어 우스운 느낌을 주었다. 이 포스터는 회화작가 샹 리안(Shang Liang)의 전시 포스터인데, 샹 리안이 표현하는 사람은 돌연변이 근육을 가지고 있어, 머리 부분이 과장되게 작다. 그림의 특징을 전시 그래픽에도 적용하여 컨텐츠와 디자인이 명쾌하게 어우러졌다. 〈Handle with Care〉는 회화작가 쉔 샤오민(Shen Shaomin)의 도록이다. 전시명 ‘HANDLE WITH CARE’와 작가명 ‘SHEN SHAOMIN’은 수직에서 약간 비껴간 형태로 교차하여 눈길을 끈다. 글자 아래에 그어진 밑줄은 독자에게 읽는 방향을 유도하여 오독의 여지를 좁힌다. 쉔 샤오민의 작품은 회화작품 위에 버블 캡으로 한 겹 더 포장한 형태이다. 디자이너는 도록에 실릴 작품과 같은 컨셉을 책 디자인에도 적용하여 표지에는 상자를 떠올리게 하는 크라프트지를 사용했다. 또 제목과 작가명을 대문자로 과감하게 교차하여 마치 테이프로 상자를 감아 포장한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다양한 활동을 거침없이 쌓아가는 Transwhite
Hangzhou, http://transwhite.cn


Transwhite는 네 곳의 스튜디오 중 유일하게 먼저 알고 있던 곳이다. 다양한 형광색과 바코드를 패턴으로 사용한 작업을 보고 기발하다고 생각했었다. 그 때문에 디자이너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매우 기대되었다. 유 퀴옹지에(Yu Qiongjie)는 스튜디오에서 의뢰를 받아 진행하는 작업 외에 주체적인 활동을 많이 한다고 한다. 먼저 디자이너, 예술가, 큐레이터 등을 초대하여 다양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Transtalk〉, 스튜디오를 도서관・쇼룸・공공시설로 성격을 바꾸어 운영하는 〈Transtage〉, 여러 실험을 통해 서체를 만들고 제품으로 제작도 하는 〈Transtype〉이 있다. 의뢰받은 일이 아니라 스스로 동기부여를 한 활동을 하기란 쉽지 않은데, 여러가지 성격의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점이 멋졌다.

이 중 〈Transtype〉의 작업은 특히 재기발랄함이 느껴졌다. 디자이너가 참고자료로 사용하는 책을 스스럼없이 보여주는 모습에서는 큰 배포가 느껴지기도 했다. 이 책에는 여러 기하학 도형으로 만든 그리드가 프린트 되어 있고, 이 그리드를 바탕으로 세밀한 격자를 다양한 방법으로 채워 글자를 만들었다. 발생할 수 있는 그리드의 형태가 제한이 없어 무궁무진하게 서체를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또, 이렇게 만들어진 서체로 아크릴을 컷팅해 귀걸이를 만들거나 다양한 형광 색상의 천을 사용해 에코백을 만드는 등 실제 제품으로 제작하여 사용하는 것이 즐거워 보였다.




약 네시간 동안 이어진 긴 강연이었지만 중국 디자인 스튜디오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디자인을 이해함에 있어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중국의 문화보다는 말하는 디자이너의 개성이 먼저 보였기 때문이다. 온오프라인을 통한 소통이 활발한 요즘, 디자이너의 작업을 판단할 때 디자이너가 속한 국가보다는 디자이너가 어떤 철학을 갖고 활동을 하는지가 더 중요한 기준처럼 느껴진다. 이들의 발표 자료에는 같이 전시를 준비하고, 서로의 워크숍에 참여하는 모습으로 종종 서로가 등장했다. 강연을 보고 느낀바를 토대로 지금, 중국 그래픽 디자인의 한 장면을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상하이와 항저우를 거점으로 한 신진 스튜디오 네 곳은 각각의 스튜디오가 중요시하는 가치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이들은 함께  ‘그래픽 디자인’을 동력으로 이야기하고, 공부하고, 무언가 만들어 나가고 있다.



2019. 10.

사록
@sa.rok.sar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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